
"35초 동안 땅이 진동을 했습니다. 고작 35초였어요.”
한국을 떠난 지 37시간만에 아이티에 도착했습니다. 타이뻬이와 로스엔젤레스 그리고 마이에미를 거쳐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렝스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동안 민간 항공기의 출입이 통제되다가 어제인 2월 19일부터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민간인들의 방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아이티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카리브해의 에머럴드 빛 바다와 푸른 숲이 어우러져 있는 이곳에서 그런 재난이 일어났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섬 전체가 평온해 보였습니다.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활주로에 안착하자 도처에 유엔과 여러나라의 헬기, 트럭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여기가 바로 엄청난 재앙이 스치고간 아이티임을 대변해주고 있었습니다. 남미의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달구어댔습니다. 공항의 출입국 관리소와 세관은 모두 임시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뜨거운 태양빛 아래 공항 직원들이 열심히 승객들의 짐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티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강제로 이주하면서 이루어진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에서 아프리카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의 감성과 라틴아메리카의 열정이 만난 곳, 이곳이 바로 아이티가 아닐까요. 그러니 오죽 하겠습니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금방 쌓아두었던 짐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그 우스운 꼴에 연실 깔깔거리고, 불어, 영어, 스페인어, 부족어가 독특한 억양으로 스물스물 인간의 심리를 만지는 곳이 바로 아이티인 것 같습니다.
한참 만에 짐을 찾았습니다. 휴우, 잃어버린 짐 없이 모든 것을 찾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일 뿐 곧 이어 두려움이 일기 시작햇습니다. 이제 공항 밖을 나가면 어디로 가야하든지, 누구를 만나야하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기관을 통해 알게 된전화는 모두 불통이었습니다. 공항 밖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거칠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그들에게서 이곳의 상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밖에 나가면 불안한 치안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게 뻔했습니다. 그동안 견디기 상황을 지내오면서 격양된 이곳 사람들이 외국인을 보면 순식간에 어떤 모습으로 돌변할지 그 결과는 아무도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한 군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친절하게 우리 일행을 훝어보더니 다른 직원과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고 잠시 후, 한 남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가 우리를 인도할 실뱅이라는 아이티 사람입니다. 와우, 드디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그는 공항을 오가며 외국인들을 위해 일하는 공식(?)택시기사(물론 이 공식이라는 말은 실뱅이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며 한 말임.)입니다. 그는 현지 사정에 밝고, 자주 외국인들을 접해서 그런지 위험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있을 것 같은 신뢰감을 주는 사람입니다.
“35초 동안 땅이 엄청나게 진동을 했습니다. 고작 35초였습니다.”
실뱅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의 표정에는 그 당시의 긴박함이 베어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파괴 되었습니다. 학교와 공공기관,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번 지진으로 목숨을 잃었습니까?”
그의 고통을 너무 심하게 찔러댔을까. 잠시 생각에 잠긴 실뱅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정부에서는 21만 7천 여명이 사망을 했다고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이것은 공공건물에서 찾아낸 시신들이 대부분입니다. 무너진 개인 소유의 주택 등은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엄청난 시신들이 건물 더미에 깔려 있을 거예요. 아마 40-50만 정도가 사망을 했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사고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는 순간,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이 증명되었습니다.
무너진 대부분의 건물은 복구가 시작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땅 아이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갑작스럽게 엄청난 재앙이 찾아왔습니다.
“땅이 울렁거리면서 아래 위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어요. 순간적으로 생긴 일이라 뛸 수가 없었어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이 모든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렇습니다. 대재앙 앞에서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 모든 것을 멍하니 지켜볼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재앙이 지나간 지금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무너진 건물 사이로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습니다. 글쎄, 몇몇 아이들이 폐허가 되어 먼지가 풀풀 날리는 건물더미 위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이들은 지진으로 인한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은 한결 같이 밝았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지진의 고통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 예쁜 녀석들은 놀이에 푹 빠져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즐겁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재잘거리는 녀석들의 얼굴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재앙을 막을 수 없습니다. 재난을 피할 뾰족한 방법도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통 이후에 우리는 반응할 수 있습니다.
무너진 건물더미 위에서 놀이를 하는 아이티의 아이들처럼, 폐허가 된 이 땅 위에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35초 동안 땅이 진동을 했습니다. 고작 35초였어요.”
한국을 떠난 지 37시간만에 아이티에 도착했습니다. 타이뻬이와 로스엔젤레스 그리고 마이에미를 거쳐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렝스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동안 민간 항공기의 출입이 통제되다가 어제인 2월 19일부터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민간인들의 방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아이티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카리브해의 에머럴드 빛 바다와 푸른 숲이 어우러져 있는 이곳에서 그런 재난이 일어났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섬 전체가 평온해 보였습니다.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활주로에 안착하자 도처에 유엔과 여러나라의 헬기, 트럭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여기가 바로 엄청난 재앙이 스치고간 아이티임을 대변해주고 있었습니다. 남미의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달구어댔습니다. 공항의 출입국 관리소와 세관은 모두 임시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뜨거운 태양빛 아래 공항 직원들이 열심히 승객들의 짐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티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강제로 이주하면서 이루어진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에서 아프리카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의 감성과 라틴아메리카의 열정이 만난 곳, 이곳이 바로 아이티가 아닐까요. 그러니 오죽 하겠습니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금방 쌓아두었던 짐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그 우스운 꼴에 연실 깔깔거리고, 불어, 영어, 스페인어, 부족어가 독특한 억양으로 스물스물 인간의 심리를 만지는 곳이 바로 아이티인 것 같습니다.
한참 만에 짐을 찾았습니다. 휴우, 잃어버린 짐 없이 모든 것을 찾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일 뿐 곧 이어 두려움이 일기 시작햇습니다. 이제 공항 밖을 나가면 어디로 가야하든지, 누구를 만나야하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기관을 통해 알게 된전화는 모두 불통이었습니다. 공항 밖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거칠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그들에게서 이곳의 상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밖에 나가면 불안한 치안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게 뻔했습니다. 그동안 견디기 상황을 지내오면서 격양된 이곳 사람들이 외국인을 보면 순식간에 어떤 모습으로 돌변할지 그 결과는 아무도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한 군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친절하게 우리 일행을 훝어보더니 다른 직원과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고 잠시 후, 한 남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가 우리를 인도할 실뱅이라는 아이티 사람입니다. 와우, 드디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그는 공항을 오가며 외국인들을 위해 일하는 공식(?)택시기사(물론 이 공식이라는 말은 실뱅이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며 한 말임.)입니다. 그는 현지 사정에 밝고, 자주 외국인들을 접해서 그런지 위험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있을 것 같은 신뢰감을 주는 사람입니다.
“35초 동안 땅이 엄청나게 진동을 했습니다. 고작 35초였습니다.”
실뱅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의 표정에는 그 당시의 긴박함이 베어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파괴 되었습니다. 학교와 공공기관,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번 지진으로 목숨을 잃었습니까?”
그의 고통을 너무 심하게 찔러댔을까. 잠시 생각에 잠긴 실뱅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정부에서는 21만 7천 여명이 사망을 했다고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이것은 공공건물에서 찾아낸 시신들이 대부분입니다. 무너진 개인 소유의 주택 등은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엄청난 시신들이 건물 더미에 깔려 있을 거예요. 아마 40-50만 정도가 사망을 했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사고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는 순간,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이 증명되었습니다.
무너진 대부분의 건물은 복구가 시작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땅 아이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갑작스럽게 엄청난 재앙이 찾아왔습니다.
“땅이 울렁거리면서 아래 위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어요. 순간적으로 생긴 일이라 뛸 수가 없었어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이 모든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렇습니다. 대재앙 앞에서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 모든 것을 멍하니 지켜볼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재앙이 지나간 지금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무너진 건물 사이로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습니다. 글쎄, 몇몇 아이들이 폐허가 되어 먼지가 풀풀 날리는 건물더미 위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이들은 지진으로 인한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은 한결 같이 밝았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지진의 고통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 예쁜 녀석들은 놀이에 푹 빠져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즐겁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재잘거리는 녀석들의 얼굴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재앙을 막을 수 없습니다. 재난을 피할 뾰족한 방법도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통 이후에 우리는 반응할 수 있습니다.
무너진 건물더미 위에서 놀이를 하는 아이티의 아이들처럼, 폐허가 된 이 땅 위에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