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구호]조선일보와 국민일보에 나간 기사들을 모았습니다...

2005-01-06

[아시아 지진해일 참사―印尼여기자 인터뷰] “식량·물…아무것도 없다”
기사입력 : 2005.01.02, 18:05

인도네시아 뜨라판차 스와라 라디오 방송의 노비타 시아니(26·여) 기자는 2일 반다아체시에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긴급구호팀을 만나자 자신도 크리스천이라며 잃었던 가족을 찾은 듯 반가워했다.
지난달 26일 지진해일 발생 직후 험난한 열대우림을 차로 23시간이나 달려 이 곳에 왔다는 그는 구호팀과 동행한 기자에게 “아체는 소수의 크리스천 주민이 종교적 차별을 당하는 지역”이라며 “기자라는 사명감과 함께 크리스천 주민을 사랑하는 마음에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 왔다”고 말했다.

-이곳까지 어떻게 왔나.
△우리 방송국은 반다아체에서 700㎞ 떨어진 메단시에 있다. 사고 직후 곧바로 차로 출발했다. 곳곳이 유실된 도로를 뚫고 오면서 수차례 게릴라 반군과 정부군 초소를 만나 제지당했지만 간신히 설득해 통과했다.지난달 27일 새벽 반다아체에 도착했다.

-이 곳에 온 계기는.
△나는 수마트라섬 중부의 바딱족 출신이다. 아체 등 수마트라 서부의 레장족이나 말레이족은 대부분 이슬람 교도지만 우리 종족에는 크리스천이 상당수 있다. 아체에서 종교적 차별에도 신앙을 지키는 소수 크리스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도 달려 올 수밖에 없었다.

-도착 당시 상황은 어땠나.
△반다아체에서 해일에 숨진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숫자일 뿐이었다.시내 방리마 우린 거리로 갔더니 어디까지가 시체이고,어디가 땅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발을 잘못디뎌 시체 한 구를 밟았는데 입에서 왈칵 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옆에서 한동안 토하느라 정신을 못차렸다. 28일까지 그런 상황이 계속됐고 29일부터 자카르타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에서 구호물자가 조금씩 들어왔다.

-그동안 지켜본 주민들 상황을 말해달라.
△그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다. 식량도 물도 전기도 없었다. 주정부와 군대도 마찬가지다. 정부군 기지는 해안에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파괴됐다. 내륙에 있는 반군 게릴라들도 큰 피해를 당했을 것이다.

-사고 초기부터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이 곳에 오면서 절대 울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끊임없이 ‘나는 프로다’라고 되뇌었다.처음 끔찍한 시체를 봤을 때도 구토는 했을망정 울지는 않았다.그러나 실종된 가족을 찾지 못한 채 울부짖는 유족을 위로하면서 눈물이 흐르는 걸 어쩔 수 없었다.

CNN 등 일부 외신은 이 곳 상황을 전하며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그런 보도에 가슴아파 하고 있다.

반다아체=한장희 특파원

아시아 지진해일 참사―구호현장] 여진 공포·끊긴 도로…장애를 넘고 넘어
기사입력 : 2005.01.02, 18:24

아시아 지진해일 최대 피해지인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에 들어간 구호팀과 취재진은 계속 지축을 흔드는 여진의 공포와 수시로 끊기는 통신망에 애를 먹고 있다. 반다아체는 진앙인 수마트라섬 연안 해저와 250여㎞ 떨어져 있는 곳이다.

기자가 숙소에 머문 1일 밤 3차례나 여진이 계속됐다.새벽녘에 발생한 세번째 여진은 30초 가량 이어져 투숙객들이 방문을 열고 뛰어나와 대피할 태세를 갖추는 소동을 벌일 정도였다. 현지인들은 “매일같이 서너번씩 여진이 있다”며 “이 때문에 주민들이 고지대로 대피해 시내로 내려오지 않고 천막생활한다”고 전했다.

반다아체 공항 도착 직후 짐을 운반할 때도 강한 여진이 발생,공항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출입문을 향해 뛰어나가기도 했다.

반다아체 주정부 건물에 차려진 재난대책본부 ‘센트럴 포스코’의 아디푸트로 재난구호본부장은 기자와 구호팀에게 “우리는 당신들에게 어떤 도움도 줄 형편이 못된다. 다만 어느 지역 구호작업이 시급한 지 알려주는 역할만 할 뿐이니 그저 최선을 다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수마트라섬 동부해안은 유실도로가 상당부분 복구됐지만 서부해안 도로 235㎞는 완전히 유실돼 손도 못쓰는 형편”이라면서 “서부해안을 따라 반다아체에서 물라보까지 700㎞ 해안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구호팀인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서원석 부총재가 “그럼 구호팀이 전혀 가지 못한 서부 쌀랑 지역에 가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는 “현재로선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통신 및 전력 사정 역시 열악해 세계 각국 취재진은 인터넷 접속선을 찾아 시내 곳곳을 헤매고 있다.

반다아체 주정부 청사에 마련된 프레스 센터에선 여진이 발생할 때마다 전력이 끊겨 취재진 100여명이 미리 송신장비를 충전하기 위해 콘센트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로밍 시스템을 갖춘 국내 휴대전화는 100차례 통신을 시도하면 1∼2차례 성공할 정도다. 따라서 본사로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서는 지진해일 피해를 입지 않은 고지대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주민들의 양해를 구해 전화선으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긴급구호팀 22명은 신속한 구호활동과 선행으로 현지인들에게 찬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31일 오후 수마트라섬 메단 공항에서는 이들이 반다아체행 수송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수라장인 공항 곳곳을 청소하며 봉사활동을 벌이자 현지인과 외신 기자들이 ‘넘버원’을 외치기도 했다. 구호팀은 열악한 항공 사정으로 언제 출발할 지 모르는 수송기를 기다리면서도 잠시 짬을 내 자욱한 담배연기와 쓰레기로 엉망이 된 공항을 물청소로 깨끗이 정리했다. 청소장면을 이상하다는듯 쳐다보던 공항 직원과 외신 기자들은 잠시 후 깨끗해진 공항 실내를 둘러보며 구호팀에 인사를 건네오기도 했다.

반다아체=한장희 특파원
[본보 한장희 특파원 3信] 곪은 상처 안고 진료캠프로
기사입력 : 2005.01.02, 18:30

“다음 환자 들어오세요. 이런,정강이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찢어졌네! 간호사, 빨리 소독부터 하세요.”

2일 오전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시 중심가에서 차로 20분쯤 떨어진 루이가자 지역 TVRI 방송국 건물 마당에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긴급구호팀 진료캠프가 설치되자마자 환자들이 밀려들었다.

비교적 고지대인 이곳에는 이재민 2000여명이 천막생활을 하고 있다. 자녀를 잃고 반쯤 넋이 나가 남편 손에 이끌려온 아내, 다리상처가 벌어져 앙상한 뼈를 드러낸 어린이, 더운 날씨에 상처부위가 곪을 대로 곪아 고름이 흐르는 노인….

반다아체는 해안에서 약 12㎞ 지점까지 지진해일로 초토화됐다. 현지인 구조대가 해안부터 시작해 구조작업지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아직 피해지역 중 4분의 1 정도만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2일 현재 신원확인절차도 생략한 채 간신히 수습해 이슬람관습에 따라 화장하지 않고 땅에 묻은 시신은 1만2381구. 8만∼9만명으로 추정되는 사망자 중 상당수 시신은 바닷물에 휩쓸려갔다.

외과담당 김현태(35) 의료팀장은 “2003년 이라크전쟁터 의료봉사도 참여했는데 이라크엔 그나마 야전병원이라도 있었지만 이곳엔 정말 아무 것도 없다”며 “외과환자들은 상처가 덧날 대로 덧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진료캠프를 찾은 마르와니(44)씨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뒤 정상생활이 불가능한 ‘외상후증후근’ 환자였다. 자녀와 부모가 숨지고 시신조차 찾지 못하자 나흘째 잠을 못자고 심한 구토에 시달려왔다. 의료팀이 신경안정제를 주사하고 약을 건네자 수십차례 ‘땡큐’를 연발하고서야 돌아섰다. 1일 저녁부터 2일 오후까지 의료팀이 식사도 거르고 진료한 환자는 약 300명. 환자 외에도 구호품을 받으려는 수백명의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죽음의 도시 반다아체엔 마실 물도, 음식도, 전기도 없어 각국 구호팀 선발대와 외신 취재진도 비스킷과 생수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생필품 부족은 시신이 널려 있는 강과 가족을 찾는 주민들을 지켜보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인력거가 연결된 오토바이를 빌려 시내로 들어서자 끔찍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진해일 이후 처음 소나기가 내린 직후여서 시신에서 흘러나온 핏물과 썩은 물이 빗물과 함께 뒤섞여 거리 곳곳에 흐르고 있었다. 군데군데 패인 웅덩이마다 수인성 전염병 사태를 예고하듯 이런 물이 고여 있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메단강 동쪽 ‘메단호텔’에는 거대한 선박이 해안에서 500m나 밀려와 장식물처럼 걸려 있었다. 이 호텔앞에서 장사를 했다는 자카리아(52)씨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가족과 친척 10명이 죽었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제발 가족을 찾아달라”며 기자에게 매달렸다.

인근 아체강에는 검붉은 색깔로 퉁퉁 부은 시신 수백구가 떠 있었다. 한 외신기자가 사진을 찍으려고 다리위로 올라서자 주민들은 “미끄러지면 핏물에 범벅이 되니 비켜서라”고 했다. 강가에 정박해 있는 배들은 가족과 친척 생사를 확인하려는 현지인들이 육로나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대신해 타고 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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