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함께 하셨던 한분 한분 찾아 뵙지도 못하고 한해를 넘겼습니다. 이제 그때를 결산하며 다시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며 새롭게 결단하고 준비하는 마음을 주시니 새로운 한해가 소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지난 한해 북한을 향해 그러한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한팀이 되어 주셔서 이룬 역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값진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분열의 아픔이 있는 그 땅에 하나됨으로 다가 갔었습니다. 둘째는 콩과 같이 작은 사업, 작은 수고를 심어 큰 열매를 보았습니다. 셋째는 북한과 우리는 서로가 이익을 보았습니다. 함께 잘 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넷째는 서로 안에 값진 신뢰를 성실히 쌓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사심 없이, 거름같이 자신을 주셨던 많은 분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의 수고를 진심으로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 들어 지난 2월에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방문은 작년 10월 방문의 열매를 보러 다녀온 여행이었습니다. 작년 10월, “북한연구학교” 학생팀이 북한을 방문해서 순안 공항에서 개성을 가는 도중에 차가 고장이 났었습니다. 그 차는 수리하려고 평양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평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황해북도 “황주군”에서 첫날 밤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 지점을 마음에 담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12월에 다섯번째 콩우유 공급소를 그곳에 세우도록 결정하였습니다. 기계를 들여 보내고 가보니 고아 850명이 있는 학원(인민학교와 중학교 나이의 고아들을 모아놓고 교육하며 양육하는 고아원)에 콩우유 공급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고아원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그 학원을 방문했을 때, 노래 부르는 아이들이 앉아서 부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서서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들의 키가 덜 자라서 일반 중학교 학생들의 앉은 키 정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빨리 자라게 할지?' 그나마 저들이 콩우유를 이제 먹게 되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봄, 가을로 옷과 학용품을 아이들에게 약속하고 돌아와 이제 4월초에 가지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세워진 콩우유 공급소가 5군데가 되었습니다.
지난 해 함께 하셨던 한분 한분 찾아 뵙지도 못하고 한해를 넘겼습니다.
이제 그때를 결산하며 다시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며 새롭게 결단하고 준비하는 마음을 주시니
새로운 한해가 소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지난 한해 북한을 향해 그러한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한팀이 되어 주셔서 이룬 역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값진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분열의 아픔이 있는 그 땅에 하나됨으로 다가 갔었습니다.
둘째는 콩과 같이 작은 사업, 작은 수고를 심어 큰 열매를 보았습니다.
셋째는 북한과 우리는 서로가 이익을 보았습니다. 함께 잘 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넷째는 서로 안에 값진 신뢰를 성실히 쌓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사심 없이,
거름같이 자신을 주셨던 많은 분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의 수고를 진심으로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 들어 지난 2월에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방문은 작년 10월 방문의 열매를 보러 다녀온 여행이었습니다.
작년 10월, “북한연구학교” 학생팀이 북한을 방문해서 순안 공항에서 개성을 가는 도중에 차가 고장이 났었습니다.
그 차는 수리하려고 평양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평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황해북도 “황주군”에서 첫날 밤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 지점을 마음에 담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12월에 다섯번째 콩우유 공급소를 그곳에 세우도록 결정하였습니다.
기계를 들여 보내고 가보니 고아 850명이 있는 학원(인민학교와 중학교 나이의 고아들을 모아놓고 교육하며 양육하는 고아원)에 콩우유 공급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고아원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그 학원을 방문했을 때, 노래 부르는 아이들이 앉아서 부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서서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들의 키가 덜 자라서 일반 중학교 학생들의 앉은 키 정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빨리 자라게 할지?' 그나마 저들이 콩우유를 이제 먹게 되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봄, 가을로 옷과 학용품을 아이들에게 약속하고 돌아와 이제 4월초에 가지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세워진 콩우유 공급소가 5군데가 되었습니다.
함께 해준 여러분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